어떤 화학물질이 암이나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환경 중에 오랫동안 잔류해 생태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누구나 쉽게,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안전한 물질로 대체하는 것, 또는 생산공정을 대체하는 것을 꼽을 것이다. 물론 이것을 모든 경우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고 막대한 돈이 들어 불합리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선진국에서는 발암물질과 같은 위험물질은 물질이나 공정을 대체하도록 법적으로 명문화하고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해 기업을 독려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법령에서는 “사업주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해야 하며, 이때 대체를 우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덴마크 안전보건관련 법규에서는 물질이나 공정의 대체가 가능하다면 반드시 대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덴마크 환경부에서는 대체를 권장하는 물질 약 8천종을 공표하기도 했다. 스웨덴은 이미 지난 80년대 후반 TCE(트라이클로로에틸렌)를 금지하겠다는 국가 차원의 결정과 관련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사용량을 현저히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프랑스는 23개 주요 발암물질에 대해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대체물질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물질대체 노력을 견인하고 있다.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의 발암물질목록1.0에 따르면 벤젠은 백혈병·비호지킨스림프종·골수종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확실한 1급 발암물질이다. TCE는 2급 발암물질로서 백혈병·비호지킨스림프종·간암·신장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물질이다.
우리나라 현실은 어떨까
약 2년 전 필자는 경기도 소재의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사업장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사업장은 금속을 가공하면서 기름과 각종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세척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휘발유와 TCE라는 물질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휘발유에 벤젠이 함유돼 있다. 작업 중 노동자들이 벤젠에 노출되는 것을 확인해 안전한 세척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TCE 또한 타 사업장의 대체사례를 들어 물질대체를 권고했다. 왜냐 하면 벤젠과 TCE는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었고, 현장의 사용·관리실태로 판단할 때 위험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이 사업장을 다시 찾게 됐다. 2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공정은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작업방식도 동일하고 환기나 밀폐도 개선된 것이 없으며, 보호장구 지급이나 착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발암물질임을 분명히 알려 주고 안전한 물질로 바꿔야 한다고 권고했음에도 현장은 왜 변하지 않았을까. 노조 관계자와 현장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법적으로 기준 미만이니까 안전하다는 논리지요. 회사는….”
“회사측에 대체물질을 찾아보라고 요구했지만 대체물질이 없다는 답변이 왔어요.”
“세척제를 바꾸면 닦기가 쉽지 않아요. 작업이 안 됩니다. 위험한 줄 알지만 그냥 씁니다.”
불행히도 한국은 법적으로 물질이나 공정을 대체할 것을 의무화하거나 권고하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 따라서 법적 기준 이하로 유지되면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또한 정부가 주도적으로 대체와 관련한 정보를 구축해 제공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업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외국에서는 이미 국가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대체가 가능한 경우에도 상기 사업장에서처럼 대체물질이 없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기업이 실제 행동을 취하도록 견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이것이 결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 노동자 스스로 자신이 취급하는 물질과 공정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물질이나 공정대체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안전보건 관련 노사협상에 힘을 실어 주는 활동을 조직하고 전개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정부를 상대로 제도개선 요구 등이 필요할 경우에는 지지를 표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노동자와 노조가 이러한 활동을 전개해 성과를 얻은 모범적인 사례들이 있다. 우리 현실에서는 너무 힘들다고 현실 탓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 노동자들에게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있었던가.
곽현석, 노동환경건강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