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페놀A(BPA) 과연 안전한가?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공동대표, 운영위원장 임상혁(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BPA는 플라스틱·에폭시 수지·감열지 등의 제조에 사용되는 원료다. 세계적으로 매년 200만톤 이상이 소비되고, 한국에서도 BPA 시장 규모가 2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BPA는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젖병·물병·식품저장 용기는 물론이고, 에폭시 수지로 코팅한 캔이나 종이컵에서 녹아 나오는 BPA가 문제가 된다. BPA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자 수 감소 등 남성 성기능에 영향을 주고, 어린아이의 성조숙증뿐만 아니라 불안, 우울 지수가 높아지고, 학습 능력도 떨어뜨리는 등 건강상의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2015년 1월,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보고서와 언론보도자료를 통해 ‘BPA의 노출로 인한 소비자 건강 위해성은 없다’고 밝혔고, 한국의 일부언론에서 이 사실을 보도했다. 유럽식품안전청의 보도자료 제목을 보면 마치 BPA의 유해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08년부터 수십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과학위원회 등을 통해 450여 편의 학술연구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유럽식품안전청의 보고서 결과는 크게 다음과 같다.
- 1. 동물실험을 통해 높은 농도의 BPA가 신장, 간, 유방조직에 악영향을 미침을 확인하였다.
- 2. 암발생, 생식계, 신경계, 면역계, 비만과 심혈관계 영향을 미치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3. 음식을 통해 노출되는 BPA 양은 명확히 밝혔지만, 피부 또는 호흡기를 통한 BPA 노출 정도는 명확하지 않다.
- 4. 따라서 현재의 BPA 안전기준인 일일섭취한계량 50µg/kg of bw/day을 4µg/kg of bw/day으로 낮춘다.
즉 보고서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BPA의 유해성을 확인하였고, 질병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일일섭취한계량을 50µg에서 4µg로 낮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유럽식품안전청은 BPA의 노출로 인한 소비자 건강 위해성은 없다고 하였을까? 유럽식품안전청은 유럽 시민들이 음식을 통해 BPA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피부 또는 호흡기를 통해 BPA에 얼마나 노출되는지(비록 불명확하지만)를 명확히 조사하였고, 유럽 시민들의 1일 BPA 노출 총량이 새롭게 제시한 4µg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한국 국민도 유럽시민처럼 BPA 노출로부터 안전할까? 발암물질 국민행동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유럽처럼 BPA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없고, BPA 일일섭취한계량 안전기준 조차 없으며,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한국 98.2kg)은 유럽(영국 56.3kg)은 물론 미국(97.7kg)보다 높기 때문이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BPA는 안전하다’ 주장이 아니라, 유럽처럼 BPA 소비량을 줄이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 국민 1인당 BPA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광범위한 조사와 더불어 한국인에 맞는 일일섭취한계량 안전기준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정부, 기업, 언론에 유럽의 한 기업인의 코멘트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유럽식품안전청의 보고서는 우리 회사의 노력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 회사의 결정은 소비자가 우려하고 있는 BPA를 모든 상품에서 단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