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법 하위법령 입법예고에 대한 발암물질국민행동의 입장
환경부는 발암물질 등 고독성물질 저감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라
작년 제정된 화학물질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률(이하 화평법)의 하위법령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입법예고되었다. 이로써 화평법은 시행만 남겨놓게 되었다. 오늘은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마지막 날이다.
화평법은 유럽의 리치(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z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를 본 따 만든 것이다. 리치나 화평법을 제정하도록 이끈 배경은 분명했다.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과 용도를 파악하고, 그 정보를 사용자들과 소비자들에게까지 전달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위험한 물질은 용도를 제한하고 대체물질의 도입을 촉진하여 화학물질의 위험 자체를 저감시키는 것. 이 두 가지는 표류하는 화평법을 바로잡아 줄 나침반이며 등대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확고한 사명도 등장하였다.
리치가 이미 2007년에 시행되었으므로, 우리의 화평법 제정은 꽤 늦은 편이다. 우리의 화평법이 리치의 부실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늦은 것이라면 참 좋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경제단체들은 화평법이 제정되면 우리나라에서 기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호도하였고, 기업친화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와 규제를 암적 존재로 규정하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 화평법은 지표를 상실하고 표류하였다. 그러다가 가습기살균제 사고가 발생하였고 화평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였다. 결국 정부의 입법안과 국회의원의 수정안이 절충되어 화평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화평법에 제기되는 가장 큰 우려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독성이나 용도를 등록하지 않은 채 위험한 물질이 유통되는 것을 막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모든 화학물질을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등록대상을 정부가 정해서 등록하는 방식으로 법을 제정한 탓이다. 둘째, 독성정보를 제대로 구축하여 화학물질 사용자와 소비자에게까지 전달하는 것이 일부분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생활용품이 존재하는데, 이 중에서 세정제 등 일부 생활화학용품만 제품정보 관리 및 전달이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 우려는 앞으로 화평법이 시행되면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사실로 확인될 것이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는 화평법 하위법령 제정 테이블에 적극 참여하여 화평법 취지를 복원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우리나라 기업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하는 것이며, 정부가 기업을 달래고 구슬려서 이끌어가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깨달음이었다. 기업측에서는 독성을 파악할 수 없는 물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으며, 기존에 불법과 편법으로 쉽게 사용하던 화학물질을 못 쓰게 되는 것만 걱정하였다. 기업이 국민들의 건강과 우리의 환경을 걱정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부실한 화평법에서도 더 양보한 하위법령이 제정되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블을 뛰쳐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있다. 유럽사회에서 리치를 도입했다고 하여, 한국에서도 정상적으로 화평법을 도입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은 순진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화평법이 시행되면서 기업의 무능력과 무책임이 드러나도록 하려면 이 제도를 잘 이해하고 집행과정을 감시하며 그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시민사회에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확신과 요구를 갖게 되었다.
첫째, 화학물질 위험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단호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체사회가 공감하는 화학물질 저감이라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기업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또는 비용 핑계로 국민들의 위험을 방치하겠다고 버틸 것이다. 기업의 구구절절한 이유를 들어주기 시작하면 또다시 화평법은 시행에서조차 표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막기 위해서 이제 한국사회는 발암물질 등 고독성물질에 대해 소비자노출이 없도록 용도를 제한하고 대체물질을 도입하는 등 실질적인 저감에 나서겠다는 원칙이 확고히 서야 한다. 유럽의 국민들이 리치 제정과 시행에 협력하는 이유는 고독성물질을 저감하겠다는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도 환경부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독성물질을 저감하겠다는 원칙이 더욱 선명하게 공표되어야 한다.
둘째, 정보를 제대로 구축하고 공개하는 것이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이 등록하고 신고한 정보들이 부실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며, 그 정보들을 모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암과 불임, 기형 등을 유발시키는 고독성물질이 얼마나 제조, 수입, 유통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꼭 그 물질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치명적인 물질이 생활용품에 사용되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발암물질국민행동은 정부에게 이러한 요구를 말로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독성물질 저감을 위한 노력을 적극 추진할 것이다. 우리는 발암물질 등 고독성물질 목록을 민간 차원에서 제정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화평법을 통해 구축되는 정보들을 분석하여, 어떤 기업이 고독성물질을 주로 제조하고 수입하는지 확인할 것이며,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기업들에게 소비자의식을 요구하여 고독성물질을 회피하도록 이끌어낼 것이다. 또한 고독성물질로부터 시민의 건강 특히 어린이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도록 생활용품 감시에 적극 나설 것이다.
화평법 하위법령 제정을 맞아,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정부정책 수립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길은 우리가 마주하는 위험을 줄여나가겠다는 확고한 태도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히는 바이다.
2014년 3월 31일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
[참여단체]노동환경건강연구소/녹색연합/문화연대/발암물질없는군산만들기시민행동/발암물질없는울산만들기/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참의료실현을위한청년한의사회)/아이건강국민연대/iCOOP서울지역생협협의회(강서·구로·금천한우물·서울·양천)/에코생협/여성환경연대/전국금속노동조합/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초록교육연대/한살림연합/한국진보연대/환경과생명을생각하는교사모임/환경운동연합/환경정의 |
